25년 4월 15일 화요일
치과를 방문했다. 나는 1년에 한 번씩 옛날에 교정했었던 병원으로 스케일링을 받으러 간다.
중학교 시절, 나는 입이 살짝 돌출된 형태였어서 엄마가 감사하게도 교정을 시켜주셨다. 의사 선생님이 보셔도 꽤나 입툭튀였는지 위아래양옆으로 이빨을 총 4개 뽑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숫자다.
당시 잇몸 쪽으로 마취 주사를 놓은 뒤, 펜치 같은 무서운 기구를 들고 내 이빨을 돌리는데 멀쩡한 이빨이 돌아가는 감각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취가 약간 덜 된 이빨도 있었기에 돌리는데 아파서 황급히 sos를 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빨 4개를 뽑고 거즈를 왕창 문 채로 집에 갔다. 원래 교정할 때는 밥을 잘 못 먹어서 살이 빠진다던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인간의 3대 욕구 중 식욕이 가장 왕성했던 나는 아파도 음식을 잘만 먹었다. 통증보다 배고픔이 더 참기 어려웠나 보다. 현재도 식욕이 가장 높아서 다이어트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몸이다.
어렸을 때부터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던 나는 뼈 한번 부러진 적 없이 자랐다. 엄마의 통뼈를 닮아서일까? 건강한 몸으로 태어난 것은 큰 복인 것 같다.
그러나 뼈만 튼튼한 게 아니라 먹는 것도 주는 대로 덥석 잘 먹어서 살 또한 튼실하게 붙었다. 놀랍게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허벅지 사이 공간이 떨어진 적이 없다. 허벅지끼리 사이가 너무 좋아서 걱정이다. 이젠 조금 떨어져도 괜찮을 것 같은데.. 슬프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치과를 가기 위해 퇴근 후 1시 반에 출발했다. 치과는 2시 반에 예약을 했는데 그 이유는 걸어서 가보려는 호기로운 나의 선택 때문이었다.
요즘 살이 많이 찌기도 했고 일하느라 평소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룬 나에게 준 도전 과제였다.
지하철 3코스, 4.5km, 네이버 지도로 약 1시간 15분의 거리를 가야 했다. 나는 평소 걸음이 빠른 편이라 이 정도쯤이야 1시간 내로 가겠지 하고 출발했다. 건물에서 나와 핸드폰을 보니 1시 32분이었다. 2분이 날아갔지만 어쩔 수 없지 하고 열심히 걸었다.
가는 도중 길을 선택하는 구간이 나왔다.
언덕을 넘어서 나중에 길 건너기 vs 옆에 있는 횡단보도 건너기
내 앞에 보이는 언덕은 생각보다 경사가 있었기 때문에 옆에 있는 횡단보도를 선택하고 기다리는데, 어라? 이 횡단보도 신호가 바뀔 기미가 안 보인다. 시간은 계속 가는데 똥줄이 탔다.
그렇게 신호가 바뀌고 길을 건너는데 아차, 횡단보도가 중간에 버스정류장을 중심으로 2개로 나뉘어 있었다. 산 넘어 산이다. 나는 또다시 기다리다가 신호를 건너야 했다.
편한 길로 가려는 나의 꼼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나 보다.
네이버 지도를 보면서 걸어가는데 도무지 거리가 좁혀질 생각을 안 했다. 현재 위치를 보면서 남은 거리를 계산해 보니 도저히 걸어서는 2시 반에 도착을 못할 것 같았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걷기 혹은 달리기였기 때문에 냅다 뛰기 시작했다.
나이키 에어포스를 신고 달리는데 바닥이 딱딱해서 발이 금방 아파왔다. 원래 왼발바닥이 살짝 안 좋은 상태였는데 뛰니까 근육이 좀 놀란 듯했다. 놀라도 뭐 어쩔 수 없었다. 깜짝 이벤트같이 시작한 오늘의 1시간 코스는 나와의 약속이기도 하니까 완료해야 했다.
걷고 뛰고를 반복해서 열심히 달려 나갔다. 주변의 행인들은 아마 나를 보고 어디 바쁜 일이 있나 생각을 했겠지? 실제로 시간이라는 범죄자에게 쫓기는 몸이었다.
중간에 버스라는 유혹도 있었다. 차에 몸을 맡긴 채 간다면 금방이라도 도착하는 거리인데, 오늘따라 더욱 멀게 느껴졌다. 대중교통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치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혼자서 인간승리니 말도 안 돼!! 라든가 기쁨의 승리에 취해 혼자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니 한번씩 이렇게 운동을 해주는 것도 정말 좋은 것 같다. 강추!
+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하는데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쌓여있는 치석을 제거했다. 스케일링은 언제 해도 참 아픈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고통을 잘 참는 편이라 구석구석 깨끗하게 잘해주셨다.
끝나고 입 안을 물로 헹구는데 피를 토하는 것 마냥 빨간 물이 주르륵 나오며 비릿한 피 맛이 입 안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성취감이라는 도파민에 절여진 나는 뿌듯함에 마냥 좋았다 :D
운동 조금이라도 꾸준히 해보자👊
그나저나 글이 너무 길어졌네?